1. 2024년 삼성의 위기, 하이닉스의 성장
2024년 반도체 시장의 핵심 키워드는 'AI 수요 폭발'과 'HBM(고대역폭 메모리)의 급부상'이다. 이 변화 속에서 삼성전자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었고, 반대로 SK하이닉스는 새로운 기회를 빠르게 선점하며 격차를 벌리는 데 성공했다.
삼성전자의 위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HBM 기술력의 시장 적용에서의 지연이다. 삼성은 HBM3 제품을 이미 개발한 상태였지만, 엔비디아가 요구하는 수준의 품질과 수율(양품률)을 초기에 확보하지 못해 주요 공급 파트너에서 제외되었다. 엔비디아의 H100, H200, B100 등 최신 AI GPU에 탑재된 HBM은 대부분 SK하이닉스 제품이었으며, 하이닉스는 발열 억제, 에너지 효율, 대역폭 등 핵심 성능 항목에서 신뢰를 얻었다.
둘째, 고객 대응 전략의 유연성 부족이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AMD, 구글 등의 요청에 맞춰 빠른 커스터마이징과 기술 협업을 진행해 고객 신뢰를 확보했지만, 삼성은 내부 품질 검증과 생산 조정 속도가 느려 시장 대응 타이밍을 놓쳤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는 '기술력은 있으나 시장 적응력 부족'이라는 삼성의 기존 약점을 다시 한번 노출시킨 사례였다.
반면 SK하이닉스는 HBM3를 조기에 안정화하며 HBM3E 양산 체제로 신속히 전환했고, 이는 AI 기업들과의 공급 계약 확대, 기술 공동개발 파트너십 확보로 이어졌다. 특히 TSV 공정의 정밀도, 열 제어 구조, 고속 패키징 기술에서 우위를 보여주며 HBM 시장 점유율 1위를 확보했다.
이 같은 성과는 단기 매출 확대를 넘어서, 브랜드 가치 제고와 차세대 AI 반도체 생태계 내 영향력 확대라는 장기적 성과로도 연결되고 있다.
삼성과 하이닉스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각자의 향후 전략을 명확히 설정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목표: HBM4와 CXL 메모리 시장 조기 선점, 파운드리와 메모리 융합 패키지 기술 확대, 글로벌 AI 고객사 다변화
하이닉스의 목표: HBM4E 개발 가속, AI 전용 고대역폭 DRAM 라인업 확대, 미세공정·후공정 일관 생산 체계 구축
결과적으로, 2024년은 두 기업 모두에게 '과거 방식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 해'였다. 삼성은 시스템 유연성과 고객 밀착 전략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하이닉스는 기술 적중력과 시장 집중 전략의 효과를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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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HBM이 뭐길래?
HBM(High Bandwidth Memory)은 고대역폭 메모리라는 뜻으로, 한정된 공간 안에서 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메모리다. 기존 DRAM이 수평으로 배치되어 있는 반면, HBM은 여러 개의 DRAM 칩을 층층이 쌓아올린 ‘적층 구조’를 갖는다.
이 칩들은 TSV(Through Silicon Via)라는 미세한 관통 전극으로 연결되어 있어, 짧은 거리로 더 많은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다. 쉽게 말해, 여러 차선을 가진 고속도로처럼 더 빠른 정보 처리와 대역폭을 제공한다.
이 구조는 AI 연산, 자율주행 컴퓨터, 고성능 서버 등에서 필요한 ‘순식간에 많은 양의 데이터를 불러오고 계산하는 일’을 가능하게 한다. HBM3E는 최대 1.2TB/s 이상의 전송 속도를 지원하며, 기존 DDR보다 수십 배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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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I, 자동차, 서버에 들어가는 반도체와 메모리
‘반도체’는 전기적 신호를 제어하고 기억하고 처리하는 부품이다. 크게 ‘연산을 하는 반도체(시스템 반도체)’와 ‘정보를 저장하는 반도체(메모리 반도체)’로 나뉜다.
시스템 반도체: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신경망처리장치(NPU), 센서 등
메모리 반도체: DRAM, NAND, HBM 등
이 반도체들은 디지털 기기 거의 모든 곳에 들어간다. 스마트폰, 자동차, TV, 서버, AI 시스템 모두에 필수적이다.
● AI에는 왜 메모리가 중요할까? AI가 문장을 이해하고 그림을 그리려면, 아주 많은 데이터를 동시에 빠르게 불러와 처리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고속 메모리’다. HBM은 GPU 바로 옆에 붙어서 데이터 병목을 줄이고, 전력 소모도 낮추는 역할을 한다.
● 자동차에는 어떤 반도체가 쓰일까? 전기차와 자율주행차에는 눈(센서), 뇌(프로세서), 기억(메모리)이 모두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 시스템은 초당 수십 기가바이트의 데이터를 처리하는데, 이를 빠르게 처리·저장하기 위해 차량용 DRAM과 NAND가 쓰인다. 단순한 내비게이션을 넘어, 실시간 영상 인식·판단에 메모리는 핵심 요소다.
● 서버와 데이터센터에서는? 클라우드 서비스, 검색엔진, 영상 스트리밍 등은 전 세계 사용자의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한다. 이때 수천 개의 서버가 필요하고, 각각의 서버는 대용량 DRAM과 SSD로 구성된다. 서버 DRAM과 HBM은 서버의 계산 속도와 효율성을 좌우한다.
시장조사업체 IC Insights에 따르면, 2024년 기준 AI 반도체 시장은 약 500억 달러 규모이며, 서버 DRAM은 약 220억 달러에 이른다. 차량용 반도체는 약 780억 달러 규모로 성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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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삼성과 하이닉스가 다루는 주력 반도체들
삼성전자는 DRAM, NAND, SSD 등 메모리 부문에서 글로벌 점유율 1위 기업이다. 최근에는 모바일 DRAM과 SSD를 넘어, DDR5와 CXL 메모리 등 차세대 메모리 제품에 투자하고 있다. 자체 모바일 프로세서(엑시노스)와 이미지센서 등 시스템 반도체도 보유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특히 DRAM에 강점을 가지며, AI용 HBM, 서버용 DDR5, 초저전력 LPDDR5X 등에서 경쟁력을 보인다. 최근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 후 SSD 분야 확장도 본격화되었다. 하이닉스는 전체 DRAM 중 HBM의 매출 비중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으며, 글로벌 GPU 업체와의 협력으로 기술 검증을 선점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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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발전 방향 모색
반도체의 발전은 이제 ‘칩을 얼마나 작게 만드는가’를 넘어서, ‘여러 개의 칩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연결하는가’로 옮겨가고 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기술들이 주목받는다.
유니버설 칩렛 인터페이스(UCIe): 여러 반도체 칩(칩렛)을 표준화된 방식으로 연결
CXL(Compute Express Link): CPU와 메모리 간 고속 연결로, 메모리를 공유하고 확장
3D 패키징: 메모리, CPU, GPU를 적층하여 공간과 성능 최적화
HBM4: 전송 속도와 적층 수를 더욱 높인 차세대 고대역폭 메모리
이러한 기술은 AI 서버, 엣지 컴퓨팅, 고성능 컴퓨팅(HPC) 등에 적용될 예정이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대응 제품을 준비 중이다. 특히 HBM과 TSV 기술은 한국 메모리 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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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반도체는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 자동차, 인공지능 서비스의 ‘보이지 않는 핵심’이다.
2024년은 고성능 메모리(HBM)를 중심으로 산업 전환이 본격화된 해였다.
하이닉스는 HBM 시장에서 선두 자리를 차지하며 도약했고, 삼성전자는 반격을 준비하며 고부가 제품과 파운드리, 후공정 패키징에 집중하고 있다.
앞으로의 반도체 경쟁은 전력 효율, 연산 성능, 데이터 전송 속도라는 세 가지 축에서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메모리, 특히 고대역폭 메모리를 둘러싼 기술력과 시장 대응 전략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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